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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전쟁2

제2차 세계대전과 오키나와④ 끝나지 않은 전쟁 1. 폐허가 된 오키나와 오키나와 전투는 전쟁과 상관없는 오키나와 사람까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밀어넣은 지상전이었다. 제32군 사령관 최후까지 싸우라는 말을 남긴 채 자결해 전투는 패전을 선언한 8월 15일 이후에도 9월 7일까지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되었다. 희생자는 20여만 명을 넘었는데 이중 민간인은 12만 명이 넘는다. 오키나와 사람 4명의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끝나자 오키나와는 폐허로 변했다. 1944년 10월 10일 이른바 ‘10・10 공습’으로 나하시에 있는 비행장과 항구 등이 파괴되었으며, 시가지는 콘크리트 건물 이외 대부분 가옥이 소실되었다. 사망자도 다수 나왔으며 시가지 90%가 소실되었다. 이후 나하시민은 북부로 피난갔다. 오키나와 본섬에 상륙한 미군은 일본군 사령부가 있는.. 2024. 3. 21.
제2차 세계대전과 오키나와① 전쟁의 시작 1. 모순의 시작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는 세계 전쟁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잔혹한 전쟁으로 기록된다. 1879년 오키나와를 강제 편입한 일제는 동화정책을 밀어붙였다. 일본어를 보급시키고 창씨개명을 단행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일본에서 부르는 태평양전쟁에서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특히 제2차 세계전쟁 말기에 오키나와는 미군과 일본군간에 치열한 지상전이 벌어져 20만명 넘는 희생자가 나왔다. 이중에 절반이 오키나와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일본 본토에서 분리돼 미군정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동서냉전시대에 오키나와에는 대규모 미군기지가 건설되었다. 중국을 방어하는 전진기지가 된 것이다. 게다가 오키나와 사람들은 전쟁의 상처와 함께 토지마저 빼앗겼다. .. 2024.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