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왕국7 오키나와 세계문화유산② 나카구스쿠 성터, 슈리 성터 1. 들어가며 오키나와는 뛰어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오키나와 북부와 이리오모테지마(西表島) 등이 2021년 7월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되었다. 이보다 앞서 2000년 12월에 ‘류큐왕국 구스크 및 관련 유산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곳은 성곽으로 알려진 구스크(グスク) 5곳과 관련 문화유산 4곳 등 모두 9곳이다. 나키진 성터(今帰仁城跡) 자키미 성터(座喜味城跡) 카츠렌 성터(勝連城跡) 나카구스쿠 성터(中城城跡) 세이화우타키(斎場御嶽) 타마우둔(왕릉: 玉陵) 슈리 성터(首里城跡) 소노향우타키 석문(園比屋武御嶽石門) 시키나엔(識名園) 오키나와에는 14세기에 삼국으로 나뉘었는데, 15세기 초에 류큐왕국으로 통일되었다. 류큐왕국은 조선을 비롯해 중국.. 2024. 4. 3. 오키나와 류큐왕국 삼별초 홍길동 1. 들어가며 조선왕조실록과 해동제국기에는 오키나와 관련 기록이 다수 남아 있다. 이를 통해 류큐왕국의 정치와 문화, 생활상을 알 수 있다. 당시 조선과 류큐왕국은 교류가 빈번했다. 특히 장헌공은 오키나와에 도자기 기술을 전수했으며, 이는 류큐자기(도자기)를 발전했다. 역사적 기록 이외에 확인되지 않은 부분도 남아 있다. 오키가와가 삼별초나 홍길동전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는 아직은 추측의 영역에 속하며 고증이 필요하다. 2. 오키나와와 삼별초 1) 삼별초: 난인가 항쟁인가 삼별초와 오키나와 삼별초의 항쟁 13세기 말에 고려는 원나라의 공격을 받아 패배하게 된다. 삼별초는 원나라에 반기를 들고 저항했다. 원래 삼별초는 최씨 무신정권의 사병집단으로 군부정권의 호위병이었다. .. 2024. 3. 12. 류큐왕국과 슈리성 1429년에 성립된 류큐왕국은 일본제국에 편입된 1879년까지 450년간 왕정체제를 유지했다. 수도는 나하이며, 왕궁은 슈리성(首里城)이다. 슈리성은 오키나와 여행자라면 대부분 들르는 명소이기도 하다. 류큐국 만큼이나 고난을 겪은 슈리성은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는 왕궁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에는 슈리성에 얽힌 이야기를 정리한다. 류규왕국의 왕궁 슈리성 류큐국의 왕궁인 슈리성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정확한 문헌을 남아 있지 않다. 최근 발굴조사에 따르면, 14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건물 흔적이 발견되었다. 14세기 말은 아직 류큐국이 성립되기 전이기 때문에 삼국시대, 즉 산잔(三山) 시대의 유물로 보인다. 당시는 구스크(グスク) 시대로 삼국이 경쟁하는 시대였으며, 많은 성곽이 세워진 시기.. 2024. 3. 10. 조선왕조실록과 해동제국기에 비친 류큐국 류큐국은 1429년에 탄생했지만, 그 이전부터 고려, 조선과 교류하고 교역을 했다.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은 1371년부터이다. 고려가 멸망하기 직전인 창왕 시대인 1389년 8월에는 산잔(三山) 시대에 중부지역을 지배한 쥬잔(中山)의 왕 삿토(察度)가 조공을 바쳤으며, 왜구에 잡혀간 류큐인의 송환했다는 기록이 있다.이러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또한 해동제국기에도 류큐국에 대한 설명과 지도가 게재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 우선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472년 간 왕실의 일상적인 사건과 행사, 정치적 결정, 왕실과 조정의 움직임 등을 기록한 공식 문서이다. 정사를 기록한 만큼 조선시대의 정치, 문화, 사회, 경제 등 다양한 측면을 조사하고 분석하는데 필수적인 자료이다. 조선 전기에 류큐에서 사신은 .. 2024. 3. 8.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