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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오키나와 세계문화유산② 나카구스쿠 성터, 슈리 성터

by 토라노코 2024. 4. 3.

1. 들어가며

 

오키나와는 뛰어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오키나와 북부와 이리오모테지마(西表島) 등이 2021년 7월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되었다. 이보다 앞서 2000년 12월에 ‘류큐왕국 구스크 및 관련 유산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곳은 성곽으로 알려진 구스크(グスク) 5곳과 관련 문화유산 4곳 등 모두 9곳이다.

 

슈리성(출처: https://oki-park.jp/shurijo/)

 

  • 나키진 성터(今帰仁城跡)
  • 자키미 성터(座喜味城跡)
  • 카츠렌 성터(勝連城跡)
  • 나카구스쿠 성터(中城城跡)
  • 세이화우타키(斎場御嶽)
  • 타마우둔(왕릉: 玉陵)
  • 슈리 성터(首里城跡)
  • 소노향우타키 석문(園比屋武御嶽石門)
  • 시키나엔(識名園)

 

오키나와 세계문화유산(출처: https://oki-park.jp/sp/shurijo/about/189)

 

오키나와에는 14세기에 삼국으로 나뉘었는데, 15세기 초에 류큐왕국으로 통일되었다. 류큐왕국은 조선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과 교역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일본본토와는 다른 문화를 발전시켰다. 독특한 성벽을 간직한 구스쿠,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정원, 종교시설인 우타키, 왕릉 등이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2. 나카구스쿠 성터

 

오키나와 중부에 위치한 나카구스쿠 성터는 해발 150~160m에 자리잡고 있다. 미군과 일본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오키나와 전투의 피해가 적어 축성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정확한 축성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우루마시에서 세력을 키우는 카츠렌(勝連) 성주 아마와리(阿麻和利)를 견제하기 위해 확장되었다.

 

 

沖縄の世界遺産 中城城跡

沖縄の世界遺産 琉球王国時代の記憶を 今に伝える中城城跡 自然の岩石や地形を巧みに利用した美しい曲線の城壁、当時の巧みな石積技術を目の前で見る事ができます。 「琉球王国のグスク

www.nakagusuku-jo.jp

 

15세기 중반에 왕명을 받은 고사마루(護佐丸)가 요미탄의 자카미성(座喜味城)에서 이동해 나카구스쿠에 성벽을 쌓았다. 나카구스쿠 성터는 석회암으로 쌓아 올린 성벽을 가지고 있으며, 성곽은 모두 6개이다. 성을 둘러싼 성루는 곡선의 미를 드러내고 있다. 성터는 남북으로 3단 계단식으로 축성되어 있다. 축성기술은 가치가 높다.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이 일본 본토로 향하기 전에 들러 조사하며 축성기술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나카구스쿠 성터는 나하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져 있다. 관람은 유료이다. 입장료는 어른 400엔, 중고생 300엔, 초등학생 200엔이며, 단체는 100엔이 싸다. 나카구스쿠 성터는 조망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동서로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나카구스쿠성은 류큐왕국이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고사마루는 1458년에 아마와리의 공격을 받아 패배했다. 아마와리는 나가쿠스쿠 성주 고사마루를 물리치고 류큐왕조의 왕궁이 슈리성을 공격할 계획이었지만, 왕조 군대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3. 슈리 성터

 

슈리성은 14세기 후반부터 500년간 류큐왕국의 정치와 문화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류큐왕국은 상징한다. 류큐왕국은 1429년부터 1879년까지 북쪽으로 아마미제도(奄美諸島)에서 남쪽으로 야에야마열도(八重山列島)까지 통일국가를 형성했다. 류코왕국은 조선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과 활발한 교역을 추진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성내는 본전 등 행정공간과 왕가의 주거공간, 제사를 지내는 공간 등으로 구성된다. 본전은 슈리성 중앙에 위치하며 3층 건물이다. 1층은 조정의 중요한 정치와 행사를 진행하는 장소이며, 2층은 황가의 행사를 행하는 공간, 3층은 통풍을 위한 다락방이다. 남쪽의 건물은 일본식 행사를 주관하는 시설이 있으며, 가고시마의 영주 사츠마번(薩摩藩)의 사신을 접대하는 장소로도 쓰였다. 북쪽 건물은 왕가의 부엌이 있으며, 중국의 사신을 접대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首里城公園

首里城は、琉球王国の幾多の興亡を伝える歴史の証人。琉球の島々を治め、中国、日本、朝鮮、東南アジアの国々と外交、貿易を展開した首里王府の司令塔として、王とその家族等が住み、

oki-park.jp

 

슈리성은 류큐왕국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 했다. 류큐왕국은 16세기 후반에 쇠퇴하기 시작해 1609년 사츠마번의 침략을 받아 에도막부(江戸幕府)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이후 1879년 류큐처분을 거쳐 왕조는 사라져 일본에 편입되었다. 류코처분으로 왕은 쫓겨났으며 오키나와현으로 전락했다.

 

 

슈리성은 여러 차례 수단을 겪었다. 역사적으로 다섯 번이나 불에 타 전소되었다. 특히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포탄에 전소돼 폐허가 되기도 했다. 당시 일본군은 슈리성 지하에 벙커를 만들어 사령부로 사용했다.

 

패전 이후 1950년 미군정시대에 슈리 성터에는 류큐대학교가 들어서면서 성벽 일부와 건물 기초만 남게 되었다. 1980년대 초에 류큐대학교가 니시하라쵸(西原町)로 이전한 이후에야 슈리 성터는 복원작업이 시작되었다. 1992년에 본전 등 중요 시설이 복원되었다.

 

그러나 2019년 10월 말에 화재로 본전 등 주요 시설 7동이 불탔다. 화재원인은 자연발화로 보고 있다. 소방차 60대가 출동했지만 목조건물이 많고 바람마저 강해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본전에 전시되어 있던 전시품 421점이 전소되었다. 이후 복원을 위해 기업이 기부금을 내고 시민들도 모금에 참여했다. 본전 복원은 2026년에 완성될 예정이다.

 

본전 주변은 유료이다. 현재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 곳을 견학할 수 있다. 입장료는 일반 400엔, 고교생 300엔, 초중학생 160엔이며, 단체는 20% 할인이 된다. 슈리 성터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 나하 시내는 물론 남쪽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다.

 

4. 나오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구스쿠를 먼저 소개했다. 다음에는 오키나와의 정신문화와 종교 등을 엿볼 수 있는 세이화우타키, 타마우둔, 소노향우타키 석문, 시키나엔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