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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류큐왕국과 슈리성

by 토라노코 2024. 3. 10.

1429년에 성립된 류큐왕국은 일본제국에 편입된 1879년까지 450년간 왕정체제를 유지했다. 수도는 나하이며, 왕궁은 슈리성(首里城)이다. 슈리성은 오키나와 여행자라면 대부분 들르는 명소이기도 하다. 류큐국 만큼이나 고난을 겪은 슈리성은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는 왕궁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에는 슈리성에 얽힌 이야기를 정리한다.

 

흥망성쇄를 거듭한 슈리성(출처: 首里城公園管理センター, https://oki-park.jp/shurijo/)

 

류규왕국의 왕궁 슈리성

류큐국의 왕궁인 슈리성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정확한 문헌을 남아 있지 않다. 최근 발굴조사에 따르면, 14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건물 흔적이 발견되었다. 14세기 말은 아직 류큐국이 성립되기 전이기 때문에 삼국시대, 즉 산잔(三山) 시대의 유물로 보인다. 당시는 구스크(グスク) 시대로 삼국이 경쟁하는 시대였으며, 많은 성곽이 세워진 시기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슈리성은 류큐국이 성립되기 전에 중부지방을 지배한 쥬잔(中山)의 성으로 만들어졌으며, 이후 확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삼국시대를 통일한 류큐 왕조의 초대 왕에 즉위한 쇼하시(尚巴志)왕은 슈리성을 왕궁으로 정했다. 슈리성은 류큐국의 왕궁으로 번영을 상징하게 되었다.

 

슈리성(출처: 首里城公園管理センター, https://oki-park.jp/shurijo/)

 

슈리성, 서쪽을 정면으로 배치

슈리성은 나하시 북동쪽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교역의 중심지인 나하항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했다. 슈리성은 일본의 성과는 달리 중국의 성을 모방해 지어졌다. 곡선 모양의 성벽에 둘러싸여 있으며, 성 안에는 다야한 건물과 시설이 배치되어 있다. 문과 건물은 옻으로 칠해졌다. 기와는 초기에는 고려기와를 사용했으며, 이후 류큐기와로 바꾸었다.

 

 

군사목적의 요새보다는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로서 기능하도록 설계되었다. 성곽은 오키나와의 다른 구스크와 마찬가지로 류큐 석회암으로 쌓아올렸다. 안쪽 성곽인 내곽과 바깥쪽 성관인 외곽으로 나눠진다. 세이덴(正殿)으로 불리는 본전을 비롯한 건물은 동서를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각 건물은 서쪽을 정면으로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슈리성 본전(출처: 首里城公園管理センター, https://oki-park.jp/shurijo/)

 

 

슈리성 수난사: 화재로 5차례 전소

슈리성은 오키나와의 역사를 대변하듯 수난과 고난이 많았다. 우선 슈리성은 화재가 잇따라 5차례나 소실되었다. 우선 1453년 왕위쟁탈전에서 모두 파괴되었다. 이후 재건된 슈리성은 ‘조선왕조실록’에 외관과 구조가 기록되어 있다.

 

세조실록에는 슈리성은 외성과 중성, 내성의 3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성에는 창고과 마굿간, 중성에는 경비병, 내성에는 2층 건물이 있으며, 그 내부는 3층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 3층 건물에는 왕의 거처가 있다.

 

류큐의 상징 슈리성(출처: 首里城公園管理センター, https://oki-park.jp/shurijo/)

 

이후 1660년과 1709년에도 화재가 발생해 소실되었고 이후 재건되었다. 당시 류큐국은 재정상황이 좋지 않았고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다. 이에 사츠마번에 원목 공급을 요청해야 했다.

 

류큐 처분 이후, 군주둔지, 학교, 신사로 전락

일본제국의 일부로 복속된 이른바 류큐 처분(1879년) 이후에는 왕은 쫓겨났으며, 슈리성은 왕궁과 행정 소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는 비운을 겪었다. 일본군 주둔지로 쓰이는가 하면, 학교와 신사로도 이용되기도 했다.

 

 

1912년 초등학교가 들어선 이후, 슈리성은 노후화로 붕괴 위험이 높았다. 이에 1923년 본전 해체가 검토되기도 했다. 일부 역사학자의 반대로 해체는 중지되었지만, 본전에는 신사가 세워지기까지 했다. 겨우 보수공사가 진행된 것은 1929년에 국보로 지정돼 보존하게 되면서부터다. 그러나 슈리성은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오키나와는 전쟁터로 변했다. 인명 손실도 컸으며, 슈리성도 수난을 당했다. 일본군은 오키나와에 최후의 방어선을 마련한 뒤, 슈리성에 지하호를 파고 총사령부를 설치했다. 미군은 1945년 5월에 3일간 포격을 가해 슈리성은 잿더미로 변했다.

 

게다가 미군과 일본군은 슈리성 등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이때 류큐왕국의 보물과 문서, 문화재마저 불타게 되었다. 퇴각하는 일본군 가운데 부상 당한 병사 5,000여명이 슈리성 지하진지에서 자격하기도 했다.

 

복원과 세계유산 등재

전쟁은 끝났지만, 슈리성에는 국립 류큐대학 캠퍼스가 바뀌었으며, 복원은 더뎌졌다. 전쟁으로 슈리성의 성벽과 건물 기초 등 일부만 남은 상태로 방치되었다.

 

 

본격적인 복원은 류큐대학이 1980년대 전반에 니시하라로 이전하면서 시작되었다. 1989년부터 발굴조사와 사진자료, 남아 있는 도면 등을 바탕으로 본전 등의 본원작업이 시작되었으며, 1992년에 18세기 이후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복원되자마자 1993년에 NHK대하드라마 ‘류큐의 바람’(琉球の風)의 촬영장으로 이용되었다. 이 대하드라마는 6개월간 방송되었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사츠마번의 류큐 침공(1609년)과 그 지배시대를 그렸다. 평균시청률은 17.3%를 기록했다. 촬영장은 슈리성과 함께 요미탄에 오픈세트장을 만들었다. 이 오픈세트장은 1998년에 테마파크로 바뀌었다.

 

2000년 12월에 슈리성은 '류큐왕국의 성터 및 관련 유산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복원된 건물과 성벽은 세계유산에 포함되지 않았다. 세계유산은 슈리성터, 시키나엔, 나카구스크 성터, 나키진성터 등 모두 9곳에 이른다.

 

슈리성 내 광장 '우나'(출처: 首里城公園管理センター, https://oki-park.jp/shurijo/)

 

2019년 화재로 전소, 복원 진행중

세계유산에 등록되지는 했지만, 화재를 막을 수는 없었다. 2019년 10월 말에도 화재가 발생했다. 본전을 포함해 본원된 본전과 북전, 남전, 서원, 소장품 등이 전소되거나 부분 소실되었다. 역사상 다섯번째 소실이었다.

 

 

화재원인은 자연발화로 추정된다. 이후 2022년 11월 3일 본전 재건 기공식이 개최되었다. 완성은 2026년 가을이다. 류큐왕국의 흥망사 만큼이나 슈리성도 부침을 거듭했다. 건물 복원과 함께 류큐왕국의 찬란한 역사도 되살아날지 주목된다.

 

복원 중인 슈리성에 자세한 정보는 슈리성공원관리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사진을 클릭해 방문하길 바란다.

 

슈리성(출처: 首里城公園管理センター, https://oki-park.jp/shuri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