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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오키나와 언어 이야기

by 토라노코 2024. 3. 13.

1. 서론

오키나와에는 '우치나구치'(うちなーぐち)라는 방언이 있다. 오키나와어, 류큐어 등으로 부리는데, 이는 본섬과 주변 섬에서 사용된 말이다. 류류왕국의 멸망과 함께 오키나와어도 일본어에 동화되었다. 한편 한글의 영향을 받은 단어도 있다. 오키나와의 방언과 한글의 영향을 정리한다.

 

 

2. 오키나와의 방언들

1) 6개 방언의 소멸 위기

일본에는 모두 8개의 방언이 존재하는데 그중 6개가 오키나와 지역의 방언이다. 홋카이도 주변의 아이누족(アイヌ族)이 사용하는 아이누어, 태평양에 있는 하치죠지마(八丈島)에는 하치죠어가 있다. 나머지는 오키나와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인데, 아마미어(奄美語), 쿠니가미어(国頭語), 오키나와어(おきなわ語), 미야코어(宮古語), 야에야마어(八重山語), 요나구니어(与那国語)이다.

 

 

이들 방언은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로 달랐으며, 단일어로 묶을 수 없다. 본섬과 여러 섬들도 구성된 오키나와는 지역마다 고유의 음운변화가 다양한 방언을 만들어 냈다. 이에 유네스코(UNESCO)에서도 6개 언어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2009년에 이들 방언을 사멸 위기에 있는 언어로 분류하고 있다.

 

 

2) 시마쿠투바

오키나와의 방언을 섬의 말, 고향의 말을 의미하는 ‘시마쿠투바’(しまくとぅば)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마쿠투바는 좁은 의미로는 오키나와 본섬 중남부의 방언을 말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시마쿠토바는 오키나와 본섬 요미탄손과 우루마시를 경계로 북부방언과 남부방언으로 나뉜다. 유네스코에서는 중남부 방언을 오키나와어로 부른다.

 

오키나와어는 류큐왕국에서 슈리성 주변에서 사용하던 공용어였다. 주로 왕족과 귀족계층이 사용했다. 류큐왕국의 공식문서나 노래, 시, 문학작품 등은 오키나와어로 쓰여졌다. 이후 교역이 늘어나 상인의 왕래가 늘어나면서 나하에서 사용하는 방언이 퍼졌으며, 19세기 후반 이후에는 나하방언이 우세해졌다.

 

이후 오키나와어는 류큐 처분 이후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식민지정책과 유사하다. 1907년 방언 단속령을 선포해 모든 교육에서 일본어를 사용하도록 했다. 이후 오키나와에서 방언은 사라지고 일본어가 보급되었다.

 

사라지는 시마쿠토바를 보급하기 위한 정책은 2000년대 이후에 나왔다. 2004년에 시마쿠토바 보급과 계승을 위한 조례를 제정해 매년 9월 18일을 '사마쿠토바의 날'의 지정했다. 오키나와현이 2013년에 실시한 '시마쿠토바 의식조사'에서 시마쿠토바를 주로 사용하는 비율은 전체 주민의 10%에 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오키나와현은 2013년에 '시마쿠토바 보급추진행동계획'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다.

 

3) 우치나 야마토구치

한편 류큐 처분 이후 오키나와어를 다양한 언어와 만나 새로운 단어와 표현을 만들어 냈다. 이는 새로운 방언은 ‘우치나야 야마토구치’(ウチナーヤマトグチ)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오키나와어와 혼합해 발생한 접촉방언이다. 오키나와의 독특한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우치나야 야마토구치는 류큐 처분 이후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지배를 받으면서 영어도 혼합되었다. 어휘나 문법이 표준어와 비슷하기 때문에 일본 본토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시마쿠토바의 어휘와 문법, 악센트가 영향을 미쳤으며, 오키나와의 사회적 환경에 유행하는 신조어까지 혼합되어 독특한 언어를 만들어 냈다. 특히 오키나와에서 가까운 큐슈 남부의 가고시마현의 방언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3. 한국어의 영향

일본어는 한자와 히라가나(平仮名), 카타카나(片仮名,)를 혼합해서 사용한다. 한자는 중국의 표어문자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가 추가되었다. 히라가나는 한자의 초서체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표음문자이다. 한자를 읽을 때 히라가나를 사용한다. 카타카나는 한자의 일부를 빌려 표기한 표음문자이다. 강조하거나 외래어를 표기할 때 사용한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영향을 주고 받았다. 일본어가 한국어에 영향을 준 것은 20세기 이후이다. 그 전에는 한국어가 일본어에 영향을 주었다.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와 신라의 문화가 일본에 전파되면서 언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것이 지명 나라(奈良)이다. 이는 고대에 신라인이 건너가 지은 지명이라는 것이다. 이는 마츠오카 시즈오(松岡静雄)나 오츠키 후미히코(大槻文彦) 등 일본 언어학자가 주장한 것이다.

 

두번째 예는 일본인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 '쿠다라나이'(くだらない)이다. 이는 '가치없다' '시시하다' '하찮다'를 뜻한다. 4~5세기경 고대 일본에서는 백제에서 들어온 문물은 좋은 것, 앞선 것,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백제가 없는, 백제의 것이 없다면 시시하고 가치없고 하찮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설도 존재한다. 원래 일본어 동사 '쿠다루'(下る)가 통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것이 부정형으로 '의미 없다' '이치에 맞지 않다'는 의미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외에 언어학자가 자주 제기하는 유사어는 다음과 같다.

 

한국어 일본어 히라가나 한국어로 읽기
가마솥 かま 가마
가마 かま 가마
사라지다 去る さる 사루
무리 むれ 무레
うえ 우에
다물다 黙る だまる 다마루
홀리다 惚れる ほれる 호레루
다발 たば 타바
마루 ばる 바루

 

일본어는 한자를 히라가나로 읽는다. 언어학자는 일반적으로 읽는 방법은 정해져 있는데, 여기에서 크게 벗어난 경우 다른 언어, 특히 한국어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한국어의 흔적은 오키나와 지명 등에도 등장한다. 예들 들면, 오키나와 본섬 북쪽에 있는 섬 '고우리지마'(古宇利島)는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 군도(郡島)로 표기되어 있다. 이 섬을 '고우리'라고 읽는 것은 '고을'(郡)에서 유래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직 근거가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고우리지마가 위치한 나키진(今帰仁)은 조선인이 표착한 지역으로 유명하며, 아직도 도자기 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오키나와에는 '바루'라는 말이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얀바루(やんばる), 우에바루(宇栄原), 요나바루(与那原) 등이 그 예이다. 히라가나로 쓰거나 '원'(原)을 '바루'로 읽는다. 이는 일본어 한자 읽기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 이에 한글의 넓은 곳을 의미하는 '마루'에서 오지 않았나 추측하기도 한다.

 

4. 결론

오키나와에는 다양한 방언이 있지만, 일본어에 동화되어 소멸의 위기에 놓여 있다. 오키나와 방언을 지키려는 시민단체가 활동하고 있지만, 젊은층의 외면을 받으며 점점 사용하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일본어에는 한국어의 흔적이 적지 않은데, 오키나와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어와 오키나와어의 관계는 여전히 연구영역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