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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류큐를 사랑한 조선의 도공 장헌공

by 토라노코 2024. 3. 9.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은 다양한 부침을 거듭한다. 임진왜란으로 삶이 뿌리까지 송두리째 뽑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조선의 도공이었다. 1592년과 1597년에 토요코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명나라를 정벌하겠다며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1598년 히데요시가 죽자 왜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때 출병한 영주(大名)들은 많은 조선인을 납치해 데려갔다. 그중에는 왕족과 학자, 도공 등도 포함되었다.

 

 

도공은 조선의 앞선 도자기기술을 보급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연행했다. 이중 가고시마 지역에 해당하는 사츠마(薩摩)의 영주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도 1598년 조선에서 퇴각하면서 전라북도 남원에서 70명이 넘는 도공을 끌고 갔다.

 

 

이들은 세개의 그룹으로 나누었으며, 장헌공(張献功)과 안일관(安一官), 안삼관(安三官) 3명은 류큐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류큐국 왕자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장일륙(張一六)이었으며 이후 당시 유행하던 중국이름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조선을 공격하기에 앞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류큐국에 출병과 군량미를 요구했다. 그러나 류큐국은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명나라의 책봉국이었기 때문에 군량미 절반을 보냈다. 사츠마번은 1609년 류큐국을 공격했다. 사츠마번의 부속국이 된 류큐국은 조공을 바치고, 왕자를 사츠마번에 보내야 했다.

 

이때 끌려온 류큐 왕자 사시키(佐敷)가 1616년에 왕이 되기 위해 류큐국으로 돌아가면서 도공의 파견을 요구했다. 장헌공은 안일관, 안삼관과 함께 류큐에 끌려 왔다. 사시키 왕자는 1621년에 쇼호(尚豊)왕이 되었다.

 

인일관과 안삼관은 다시 사츠마로 돌아갔지만 장헌공은 류큐에 남았다. 이후 장헌공은 류큐왕으로부터 나카치(仲地)라는 성을 하사받았으며, 레이신(麗伸)으로 개명했다. 마우시(眞牛)라는 여자와 결혼했으며 자식까지 낳았다. 장헌공의 후손은 사키마(崎間)나 나카치(仲地)라는 성을 사용했다.

 

 

사키마라는 성씨의 후손은 현재 나하시 남부의 고쿠바(国場)에서 가미카카즈 문중(上嘉数門中)을 형성하며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이름을 지을 때 장헌공의 후손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려'(麗)자를 돌림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이에 려달(麗達), 려강(麗康), 려직(麗直), 려보(麗保), 려허(麗許) 등으로 이름이 지었다고 한다.

 

종두법 개발에 공헌한 의사 나카치 키진(仲地紀仁)도 그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청나라에서 의학을 배웠다. 이후 1846년에 영국인 선교사로부터 종두법을 배워 류큐에서 처음으로 종두법을 개발했다.

 

장헌공의 묘(글쓴이 촬영)

 

류큐에 남은 장헌공은 류큐에 조선의 도예기술을 전수했다. 류큐의 도예을 설명하는 문헌은 그 시작을 장헌공에서 찾고 있다. 오키나와 문화연구가 카마쿠라 요시타로(鎌倉芳太郎)는 조선인 도공이 류큐에 온 이후 오키나와의 도예가 융성해졌다고 지적한다.

 

 

류큐예술연구가 히가 초겐(比嘉朝健)은 류큐의 도기를 설명하면서 처음으로 도기를 제작한 사람은 조선 도공 장헌공이었다고 주장했다. 류큐 도기의 시작을 1616년으로 설정한다. 장헌공 일행이 류큐에 온 때이다.

 

지금도 오키나와에는 장헌공의 흔적은 남아 있다. 장헌공의 묘는 국제거리 근처 '미도리가오카'(緑ケ丘)라는 공원 구석에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너무나 초라한 묘로 남아 있다. 나하시 관광자원데이터베이스에서는 장헌공의 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사츠마로 끌려온 다음 1616년에 류큐 왕조의 의뢰로 류큐에 파견된 도공들 중 한명이다(장헌공, 안일관, 안삼관의 3명이 파견되어 그 중 2명은 떠났지만, 장헌공(一六)은 청원을 받고 류큐에 머무른다). 장헌공(一六)은 그후 나카치 레이신(仲地麗伸)이라 칭하며 와쿠타무라(湧田村, 현재의 나하시 이즈미자키)에서 살았으며, 와쿠타 가마의 창시자가 된다. 중국, 아시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류큐 특유의 도자기를 완성시킨다. 장헌공(一六)은 마키시에 도공 마을을 만들었지만, 후에 츠보야로 옮기게 된다(나하시 관광자원데이터베이스, https://www.naha-contentsdb.jp/kr/spot/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