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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27

류큐왕국과 슈리성 1429년에 성립된 류큐왕국은 일본제국에 편입된 1879년까지 450년간 왕정체제를 유지했다. 수도는 나하이며, 왕궁은 슈리성(首里城)이다. 슈리성은 오키나와 여행자라면 대부분 들르는 명소이기도 하다. 류큐국 만큼이나 고난을 겪은 슈리성은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는 왕궁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에는 슈리성에 얽힌 이야기를 정리한다. 류규왕국의 왕궁 슈리성 류큐국의 왕궁인 슈리성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정확한 문헌을 남아 있지 않다. 최근 발굴조사에 따르면, 14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건물 흔적이 발견되었다. 14세기 말은 아직 류큐국이 성립되기 전이기 때문에 삼국시대, 즉 산잔(三山) 시대의 유물로 보인다. 당시는 구스크(グスク) 시대로 삼국이 경쟁하는 시대였으며, 많은 성곽이 세워진 시기.. 2024. 3. 10.
류큐를 사랑한 조선의 도공 장헌공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은 다양한 부침을 거듭한다. 임진왜란으로 삶이 뿌리까지 송두리째 뽑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조선의 도공이었다. 1592년과 1597년에 토요코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명나라를 정벌하겠다며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1598년 히데요시가 죽자 왜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때 출병한 영주(大名)들은 많은 조선인을 납치해 데려갔다. 그중에는 왕족과 학자, 도공 등도 포함되었다. 도공은 조선의 앞선 도자기기술을 보급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연행했다. 이중 가고시마 지역에 해당하는 사츠마(薩摩)의 영주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도 1598년 조선에서 퇴각하면서 전라북도 남원에서 70명이 넘는 도공을 끌고 갔다. 이들은 세개의 그룹으로 나누었으며, 장헌공(張献功)과 안일관(安一官), .. 2024. 3. 9.
조선왕조실록과 해동제국기에 비친 류큐국 류큐국은 1429년에 탄생했지만, 그 이전부터 고려, 조선과 교류하고 교역을 했다.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은 1371년부터이다. 고려가 멸망하기 직전인 창왕 시대인 1389년 8월에는 산잔(三山) 시대에 중부지역을 지배한 쥬잔(中山)의 왕 삿토(察度)가 조공을 바쳤으며, 왜구에 잡혀간 류큐인의 송환했다는 기록이 있다.이러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또한 해동제국기에도 류큐국에 대한 설명과 지도가 게재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 우선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472년 간 왕실의 일상적인 사건과 행사, 정치적 결정, 왕실과 조정의 움직임 등을 기록한 공식 문서이다. 정사를 기록한 만큼 조선시대의 정치, 문화, 사회, 경제 등 다양한 측면을 조사하고 분석하는데 필수적인 자료이다. 조선 전기에 류큐에서 사신은 .. 2024. 3. 8.
류큐왕국 흥망사 카이즈카 시대와 구스크 시대를 거쳐 1429년에 류큐왕국이 성립되었다. 일본에 편입된 1879년까지 450년간 오키나와의 왕정체제이었다. 조선왕조실록과 해동제국기에는 유구국(琉球國)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류큐왕국의 흥망사를 간단하게 정리한다. 류쿠왕국의 성립 구스크 시대는 농경사회로 변모하고 대외교역이 늘어나면서 생산성이 높아졌으며, 자연히 정치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지(按司)로 불리는 호족이 나타났고, 세력다툼을 거듭하며 세력을 키워갔다. 북부와 중부, 남부로 세력이 집중되는 산잔 시대를 맞이했다. 이후 1429년에 쇼하시(尚巴志)가 세력을 규합해 통일하게 되었다. 이렇게 류큐왕국이 탄생했다. 쇼하시가 제1대 왕에 등극했지만, 여전히 지방의 아지는 세력이 강했다. 왕권은 약해 내란이 끊이지 않.. 2024.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