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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오키나와 스테이크 약사

by 토라노코 2024. 4. 8.

1. 서론

오키나와에는 야채와 과일, 해산물 등이 풍부하며 전통적인 조리법이 발달했다. 오키나와의 장수비결은 식자재와 조리법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먹거리는 서구화되었다. 스테이크와 햄버거 등이 보편화되었다. 그중에서 오키나와 스테이크는 미군을 위한 고급 음식으로 출발해 이제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요리가 되었다.

 

지글지를 오키나와 스테이크(출처: https://okinawasteak.com)

 

2. 오키나와 스테이크 원조

 

철판에 기름이 지글지글. 스테이크는 식욕을 돋구는 소리와 함께 익어간다. 미군에 인기를 끌던 스테이크는 오키나와 사람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도 여행 중에 먹어야 하는 요리가 되었다.

 

 

그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군정이 시작된 지 5년이 지난 뒤였다. 1950년 중북부 오키나와시에 미군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에서 철판에서 고기를 구운 뒤 스프와 샐러드를 내놓았다. 미군 점령기와 일본 복귀, 거품경제를 거치면서 살아 남아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손님 눈앞에서 철판으로 굽는 철판 스테이크, 점보 스테이크 등 새로운 메뉴가 잇따라 등장했다.

 

오키나와 스테이크의 원조는 1950년에 오키나와에서 문을 연 스테이크 하우스. 고에쿠손(越來村)에 자리잡은 이 음식점은 가고시마현 키카이지마(喜界島)에 온 이주민이 문을 열었다. 이주민이라고는 하지만, 키카이지마는 1871년에 류큐왕국에서 가고시마현으로 편입된 곳이다.

 

원조는 늘 논쟁이 따르는 법. 오키나와 스테이크 원조는 1951년에 문을 연 뉴욕 레스토랑이라는 설도 있다. 이들 점포는 미국에서 배운 조리법과 접대를 살려 미군을 상대하는 자사를 시작했다. 한편 고에쿠손은 1956년에 코자시가 되었지만, 1974년에는 오키나와시에 편입되었다. 미군기지가 밀집된 기지촌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창업자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마당에 원조 논쟁은 거기까지.

 

3. 스테이크 하우스 점포 확대

 

미군을 상대로 한 식당이 부족한 상태에서 스테이크 하우스는 아침부터 자정까지 영업하며 호황을 누리자 점포는 늘어났다. 1952년에 피자하우스의 전신이 창업했다. 뉴욕 레스토랑에서 독립한 점포가 잇따라 개업했다. 1953년에 나하에서 문을 연 잭스 스테이크 하우스(Jack's Steak House)는 가격을 낮춰 서민을 겨냥했다.

 

 

이어 1954년에 조지 레스토랑, 1955년에 스테이크 하우스 전신인 Club88이 나하에서 문을 열었다. 1958년에 피자하우스가 오키나와시에서 오픈했다. 이후 1960년대에 나하시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1965년에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자 우라소에시에 코리아 스테이크 하우스가 개업하기도 했다. 샘즈 그룹이 영업도 이때 시작했다.

 

 

미군기지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군을 상대하는 식당도 거의 없던 시절. 스테이크 하우스와 뉴욕 레스토랑에는 스테이크를 먹으려는 미군이 몰려 들었다고 한다. 뉴욕 레스토랑은 점포를 늘려 한때 오키나와시에 점포가 18개로 늘었다고 한다.

 

4. 오키나와 스테이크의 정착

 

1) 일본 복귀 이후 보편화

오키나와에서 스테이크가 정착한 것은 1972년 일본 복귀 직후였다. 스테이크 식당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당시 특별조치로 수입 소고기에 붙는 관세는 본토보다 낮았다. 일본 본토에서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고급 소고기를 싸게 먹을 수 있다는 이미지가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때 손님 눈 앞에서 조리하는 철판 스테이크가 등장했다. 미군이나 미국인으로부터 오키나와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 꼭 대접해야 하는 음식이 되었다. 오키나와는 찾는 관광객도 1975년에 150만 명을 돌파했다. 일본 관광객도 오키나와에서 먹어야 하는 요리로 자리잡았다.

 

경제발전의 혜택이 오키나와에도 미쳐 1980년대 중반 이후 오키나와 사람도 스테이크를 부담없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엔고 강세가 가속되면서 손님은 미군에서 지역 주민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 초 거품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했지만 일단 정착된 가족 중심의 외식문화는 흔들리지 않았다.

 

2) 2000년대 이후 관광객 먹거리

2000년대에 접어들어 오키나와를 찾는 관광객이 급증했다. 이에 맞춰 스테이크 식당도 급증했다. 주로 일본인 관광객, 한국인과 대만인,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식당이 잇따라 개업했다. 나하시에 있는 국제거리는 관광객이라면 한번쯤 들리는 곳인데, 기존 점포에서 새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또한 아메리칸 빌리지가 있는 차탄, 리조트 호텔이 있는 요미탄과 온나손, 나고 등에도 개업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렌트카가 보급되면서 관광객의 이동이 편해지면서 스테이크 식당도 중북부로 확산되었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움직임도 나오기 시작했다. 2015년에 저렴한 스테이크를 내세운 ‘얏빠리 스테이크’가 개업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가격을 1,000엔 정도로 낮춘 점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격 경쟁에 불이 붙은 것이다.

 

5. 오키나와 스테이크 브랜드 전략

오키나와를 찾는 관광객은 2019년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외국인 관광객도 100만 명을 넘어섰다. 맛집을 찾는 관광객에 오키나와 스테이크는 맛과 볼륨을 동시에 제공했다. 그러나 2020년 신종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오키나와 스테이크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정부 보조금으로 버텨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키나와 스테이크를 브랜드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2021년 업계단체 오키나와스테이크 지역브랜드추진협의회(沖縄ステーキ地域ブランド推進協議会, COOKS)가 설립되었다. COOKS는 오키나와 스테이크를 홍보하며 브랜드화를 추진하고 있다. 홍보는 1,000엔에 먹을 수 있는 점포, 새벽・심야・24시간 영업하는 점포, 철판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점포, 배달이 되는 점포 등으로 나누어 점포를 홍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