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오키나와는 큐슈 남단에서부터 대만과 중국 대륙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섬들이 활모양을 그리며 흩어져, 혹은 연결되어 있다. 그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다양한 사료와 자료를 바탕으로 오키나와의 상고사를 간단하게 정리한다.
2. 오키나와 상고사 시대구분
우선 일본의 시대구분(편년)을 오키나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생각해 봐야 한다. 역사학계에서는 반대의견이 많다. 또한 유물이나 유적을 보더라도 중국에 가까운 미야코지마(宮古島)와 이리오모테지마(西表島) 등에서는 오키나와 본섬과는 또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오키나와를 하나로 묶어서 역사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일단 오키나와 역사는 카이즈카(貝塚)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시대는 선사시대부터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거쳐 11~12세기까지 상당히 길다. 너무나 길기 때문에 역사 구분의 의미가 사라진다.
이에 역사학자 타와타 신준(多和田真淳)은 카이즈카 시대를 초기, 전기, 중기, 후기로 다시 구분한다. 또다른 역사학자 타카미야 히로에(高宮廣衞)는 일본 시대구분에 맞춰 카이즈카 시대를 죠몬(縄文) 시대와 우루마(うるま) 시대로 다시 나눈다.
3. 오키나와 고대인
야마시타동인과 미나토가와인
오키나와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 가장 오래된 인골은 나하시에서 발결된 야마시타동인(山下洞人)이라고 한다. 학계에서는 이는 3만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구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이외에 구시카미(具志頭)에서 발견된 미나토가와인(港川人)은 1만 7,000년 전의 인골이라고 한다. 이는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거의 완전한 형태의 구석기시대 인골로 유명하다. 화석인골은 오키나와 본도를 중심으로 남쪽에 떨어져 있는 섬들에서도 발견되었다.
미나토가와인 이후 카이즈카 시대까지 유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는 공백기로 남아 있었지만, 최근 인골과 석기가 발견되고 있어 새로운 연구결과가 기대된다.
카이즈카 시대 생활
이후 신석기 시대는 카이즈카 시대, 죠몬 시대와 우루마 시대로 접어든다. 오키나와의 신석기 시대는 본토보다 길다. 카이즈카 시대는 주로 채집과 어엽, 수엽 등이 이루어졌다.
이 시대에 오키나와의 고대인은 큐슈와 교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키나와에서 잡은 조개류를 큐슈에 제공하는 대신, 본토에서는 토기와 금속제품, 유리 등을 수입했다. 이후 곡물과 금속, 천 등으로 확대되었다.
카이즈카 시대의 농경
일본에서 기원전 8, 9세기는 야요이(弥生) 시대로 분류되는데, 논농사가 시작된 시대로 불린다. 이러한 경작은 오키나와에는 전달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당시 농경생활을 뒷받침하는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오키나와는 어획 채집과 조개 채집의 시대가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현시점에서 농경이나 농사기술이 전수되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일부에서는 오키나와 고대인의 정신세계가 본토와는 달랐다고 설명한다. 즉 오키나와 고대인의 정신세계에서는 농작은 신을 거스르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농경을 거부하고 어획에 의지했다는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죠몬 시대의 농경이 시작된 것은 카이즈카 시대 후기이다. 야요이 토기 등이 유입되었지만, 야요이 문화의 영향을 제한적이었다. 오키나와 고대인은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대만에 가까운 섬들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이들 지역은 현재 사키시마(先島) 제도로 불리는데, 미야코지마와 이시가키지마(石垣島), 이리오모테지마 등 도서가 속한다. 이들 지역에서는 대만 선사 시대의 토기를 닮은 것이 출토되기도 했다. 죠몬 문화보다는 동남아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4. 오키나와 고대 3대 문화권과 토기
선사시대에 오키나와에는 3대 문화권이 존재했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북부문화권, 중부문화권, 남부문화권이다. 북부문화권은 큐슈에서 가까워 본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중부문화권은 죠몬 문화가 현 오키나와 본도로 전달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남부문화권은 대만에 가까운 섬들이 속한 지역으로 이곳은 죠몬 문화가 도달하지 않고 동남아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유물은 토기이다. 가장 오래된 토기는 손톱문양토기(爪型紋土器)이다. 토기 표면에 손톱 모양의 무늬가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이는 큐슈의 초기 죠몬 토기가 전수된 것으로 보이며, 오키나와 본도 중부지역에서 발굴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만들어진 죠몬 토기는 발굴되지 않았다.
오키나와에서 농경의 흔적은 기원전 8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본격적인 농경사회가 열린 것은 한참 뒤인 12세기 경으로 보인다. 한편 오키나와에는 17, 8세기까지 농경사회가 형성되지 않고 어획과 무역이 경제의 중심이었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5. 결론
이상과 같이 오키나와 고대사는 유적이 많지 않고, 사료가 남아 있지 않아 역사기술이 어려운 상태이다. 최근 유물이 발견되고 있으니 조금이나마 오키나와 고대사도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음에는 11~12세기에 시작된 구스크(グスク) 시대에 대해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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