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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세계문화유산① 나키진 성터, 자키미 성터, 카츠렌 성터 1. 서론 오키나와에는 자연환경이 뛰어나 2021년 7월에 오키나와 북부와 이리오모테지마(西表島) 등이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 자연유산은 인공물인 문화유산과 자연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자연유산으로 나누어진다. 자연유산은 자연미와 지형 및 지질, 생태계, 생물다양성의 4가지 평가기준에 의거해 지정된다. 오키나와 북부는 얀바루(やんばる)로 불리는 원시림을 자랑하는 곳이며, 이리오모테지만는 고유한 동식물이 서식지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자취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문화유산도 뛰어나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문화유산을 세차례로 나누어 소개한다. 이들 문화유산은 그 자체도 둘러볼 만한 곳이지만, 주변에 유명 관광지가 있어 함께 여행을 해도 좋다. 2. 세계문화유산 등재 2000년 12월 ‘류큐왕.. 2024. 4. 1.
오키나와 기지문제와 이전문제 1. 오키나와 미군기지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이후 급속하게 일본으로 동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기지문제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골칫거리였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기지가 없는 평화로운 섬'을 원했다. 그러나 주일 미군기지의 70%가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으며, 본섬의 15%를 미군기지가 차지하고 있다. 미일 정부는 미군기지를 정리하고 축소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 구체적인 대책은 추진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미군의 실탄사격 훈련, 군사훈련, 미군의 사고와 사건 등이 오키나와 사람들의 생활을 위협하게 되었다. 현재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기지는 캠프와 비행장, 탄약고, 훈련장, 통신소, 폭격장, 사격장, 항만시설, 연료 저장시설 등 다양하다. 미해병대는 제3해병 원정군과 주일 미행별 기지부.. 2024. 3. 30.
오키나와 반환과 국제해양박람회, 추라우미수족관 1. 반환 직후 여론 1972년 5월 오키나와의 시정권(施政権)은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갔다. 반환 혹은 복귀 직후 지방의회선거가 실시되었다. 지방정부와 지방경찰도 출범했다. 자위대도 주둔했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군’에 대한 반감이 강했다. 반환 전후에 여론은 좋지 않았다. NHK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반환 직전인 1970년에 본토 복귀를 원한다는 응답은 85%이었지만, 복귀 직후인 1972년에 51%로 감소했으며, 1973년에는 38%까지 급감했다. 닉슨 쇼크 이유는 1971년 닉슨 쇼크(Nixon Shock)로 인한 환율변동과 물가상승으로 불만이 쌓였기 때문이었다. 반환 이후 화폐는 달러에서 엔화로 바뀌었으며, 오키나와 사람들과 기업은 보유한 달러를 엔화로 교환해야 했다. 그러나 변동환.. 2024. 3. 28.
오키나와 반환과 밀약 1. 오키나와 반환 1.1. 반환운동 미군정의 토지 몰수에 대항해 오키나와 주민이 단결해 대항한 ‘시마구르미’(島ぐるみ) 투쟁 이후 일본 복귀운동이 거세졌다. 패전 당시에는 미국에 귀속을 원하는 여론과 오키나와의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1960년대 이후에는 일본 복귀가 지배적인 여론이 되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베트남 전쟁이 터지자 출격기지와 후방지원기지로 변했다. 이후 오키나와에는 막대한 달러가 유입되었으며, 특수를 누리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오키나와가 다시 전쟁에 말려드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터져 나왔다. 특히 1965년 이후 미 폭격기 B52가 태풍을 이유로 괌에서 카데나(嘉手納)로 옮겨 직접 출격하게 되었으며, 1968년에는 카데나가 베트남으로 출동하는 전투기의 출격기지가 되었다... 2024. 3. 26.